야고보 사도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목회할 때 있던 형제 자매들에게 보낸 서신이 야고보서입니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야고보 사도가 목회자의 심정으로 쓰게 된 서신입니다. 그들이 흩어진 이유는 외부적 핍박의 요소도 있었으나, 더 큰 이유는 내부적 문제가 훨씬 큰 것으로 보입니다. 서신의 내용도 그러한 내부적 문제들에 훨씬 많은 분량이 담겨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살펴보면, 빈부 차이로 인한 갈등이 있었고, 신앙의 형식화의 문제, 경제적인 격차로 인한 성숙하지 못한 차별의 문제, 서로를 향한 독설과 교제의 단절 등이 더해져 더 이상 공동체로 모이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책망하며, 교회가 회복 돼야할 본래의 모습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전체 106절로 되어 있는 서신의 내용이 절반이 넘게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교회로 시작하였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세속화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우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야 합니다.
흔히 야고보 사도를 선행의 사도라 부릅니다. 바울은 믿음의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 베드로를 소망의 사도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사도들의 서신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대적으로 야고보서의 강조점 선행이 믿음과 은혜가 아니라 행위라는 점에 있다고 여겨져 종교개혁시대 루터로부터 지푸라기 서신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허나,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과 행함이 서로 대치되는 듯 보이지만, 서로 다른 문제의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얻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교인들을 향해 오직 믿음을 주장하고 있고, 야고보 사도는 구원을 받은 교회의 공동체가 실천이나 행함이 없이 단지 믿음의 교리 안에서 머무르려할 때, 불신자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다는 것을 말하고, 사도 야고보는 믿는 이들은 그에 맞는 신앙의 행위가 없다면 구원을 얻었다 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강조점이 다를 뿐이지 동일한 말씀입니다.
종교 개혁 시대가 지나고 새롭게 개혁되었던 웨슬리 시대에 행함에 강조를 둔 야고보서의 말씀이 부각되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행함의 신학은 칭의의 신학과 한 쌍의 짝과 같은 메시지로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칭의의 걸맞은 삶을 사는 행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