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와 같습니다. 인칭에 신경을 쓰고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 가면 인칭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인칭으로 전개되다가 ‘우리’라는 1인칭으로 바꾸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곳이 나오는데, 이 부분들은 저자인 누가가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다른 곳과 구분하여 1인칭 복수인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눅 1:3) 노력을 통해 얻은 많은 자료들과 자신의 여행 기록을 더해 엮은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은 기독교의 중심이 유대인이 주도하는 예루살렘에서 이방인 세계의 중심인 로마로 이동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령의 주권적 역사와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기독교를 일종의 유대주의의 완성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함으로, 새로 시작하는 기독교의 합법성을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부당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님을 쫓는다는 이유만으로 박해 받는 것은 정당치 않음을 주장하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데오빌로와 같은 고위층 기독교 초신자나 구도자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호의적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또한 성장과 확산을 경험하고 있는 교회와 구성원들을 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저항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산될 수 없으며 이 땅에 시작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자신감’은 이것을 읽는 모두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일 유명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는 1장 8절의 말씀은 사도행전의 틀과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의 지경을 넓혀 가는 모습이 사도행전 전체 핵심 내용입니다. 성령의 주권과 간섭 하에 어떤 박해와 훼방이 있어도 복음 사역은 지속적으로 성공함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요 대목마다 6장 7절의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와 같은 ‘승리를 축하하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예: 9:31, 12:24; 13:48; 16:5; 19:20; 28:31 등).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두 명의 특별한 사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두 명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은 13장을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전반부에는 베드로 사도가, 후반부에는 사도 바울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사건들을 통해 두 사도를 의도적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앉은뱅이를 고치고 죽은 이를 살리며 기적적으로 옥에서 풀려는 사건 등 두 사도는 유난히 유사한 사건이나 기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이방인의 사도이자 교회를 확장한 사도 바울의 권위를 베드로의 권위와 대등하게 보여주고자 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결론이 맺어지지 않은 상태로 급하게 끝납니다. 바울이 2년 동안 로마 감옥에 갇힌 채 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 받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누가는 사도바울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신학적 의미에서 보자면 이것은 당시 초대교회에서 시작한 세계 복음화를 후대 교회가 이어 완성시켜야 한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의 역사는 지속되며, 그것을 믿고 도전하는 이들을 통해 사도행전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도행전 29장’을 계속해서 써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