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본문에서 요한이 저자임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의 품에 의지해서 주님을 팔 자가 누구냐고 질문한 것과(21:20),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로 자주 등장하는(12:23, 19:26, 20:2, 21:7) 그 사람이 기록했다고 말하는 증거로서 사도 요한이 가장 유력한 저자임을 알려줍니다. 폴리캅, 이레네우스, 클레멘트 등 초대교회의 교부들도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증거합니다.
요한복음은 기록 목적을 밝히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0절, 31절 말씀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쓴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점에서 다른 복음서와 구별됩니다.
요한복음의 핵심 단어는 ‘믿음’으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려고 기록한 복음 전도서입니다.
요한복음의 수신자는 유대인들이나 유대인 개종자들로 봅니다. 요한복음이 신약의 모든 책들 중에서 구약을 가장 폭넓게, 가장 많이 암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약을 아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줌으로서 모르고 있던 의미를 깨닫게 하고자 의도한 책이라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그러나 구약을 모른다고 요한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구약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을 때 더 풍성하고 깊은 이해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요한복음에 대해 “어린아이가 헤엄치면 놀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가 하면, 코끼리가 익사할 정도로 깊다”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라 불리는 다른 세 개의 복음서와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예수님의 묘사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묘사할 때 그분이 메시아라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피하거나, 그분의 신성에 대해 매우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인자’라는 호칭과 같은 매우 미묘한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마치 읽는 이들에게 ‘당신은 이런 분을 누구라고 하시니까?’라고 반문하는 듯 합니다. 이처럼 공관복음은 논리를 펴는 데 있어 귀납적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연역적 접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서문부터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1:1-18), 창조자이시며(3절), 성육신하신 분이며(14절), 독생하신 하나님이심(18절)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비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담대하게 또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모세를 믿었으면 나를 믿었으리라’(5:46)라는 말씀부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는 표현까지 거침없이 자 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시는데(4:25-26, 8:24, 28, 58, 13:19 등), 이것은 구약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표현입니다(출 3:14). 예수님이 ‘내가 곧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한 이 표현이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까 상상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그러한 관점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이해하며, 그분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분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은 크게 둘로 나누어서 1장부터 12장까지를 ‘표적의 책’으로 표현하고, 13장부터 21장까지를 ‘영광의 책’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표적의 책은 7개의 표적으로 유명합니다. 가나의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2:1-11)과 가버나움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일(4:46-54)과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5:1-9) 그리고 5천 명을 먹이신 것(6:5-14), 물 위를 걸어가신 사건(6:16-21), 눈먼 자를 고치신 것(9:1-7)과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리신(11:1-45) 기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임을 알리고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반면 ‘영광의 책’에서는 최후의 만찬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의 기독론으로 알려진 ‘7개의 나는~요’라는 표현도 유명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사용하신 7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들을 말합니다.“나는 생명의 떡이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요”(8:12), “나는 양의 문이요”(10:7), “나는 선한 목자요”(10:11,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14:6), “나는 포도나무요”(15:1, 5)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우리가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통 초신자들에게 요한복음을 먼저 읽기를 권면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을 믿고 영생을 얻기 바라는 사도 요한과 동일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